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비판과 반론 (문단 편집) == 비판에 대한 의견 == 조선 멸망에 즈음하여 성리학은 발전의 걸림돌이요 족쇄라는 인식이 퍼졌고, [[유럽|서양 문명]]과 [[그리스도교]] 보급에 의해 생활면에서도 많은 자리를 양보해줘야 했다. 정치적·군사적 패배의 원인을 종교와 사상에서 찾는 방식이다.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유학의 명맥은 끊기다시피 하였다. 또한 오늘날 [[대한민국]] [[대한민국/사회/문제점|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직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차별]], [[전체주의]], [[연령차별]], [[권위주의]], [[집단주의]], 직업의 귀천, [[남아선호사상]], [[똥군기]], [[호주제]], [[가부장제]], [[나일리지|나이를 내세우거나 들먹이는 문화]], [[갑의 횡포]] 등의 악습들이 유교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물론 이러한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 과연 유교 본연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은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는 [[8.15 광복|해방 이후에도]] [[제사]], 성차별에 대한 개혁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결과 해방 후 여성들이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가속화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애당초 공자가 주장한 3년상은 당시 시점에서 봐도 [[묵자]] 등에 의해 허례허식이라고 까이는 경우가 있었다.[* 당장에 3년상 제대로 치르다가 외려 상주가 죽어 아이러니하게도 '''효도를 하려다가 불효를 저지르는'''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위 글에서 언급된 문제 중 일부는 조선 왕조 혹은 현대 대한민국의 문제점일 뿐이다. '''열거된 문제들을 모두 유교로 인한 문제라고만 단정짓고 결론을 귀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 예로 직업의 귀천 항목을 보아도 [[사농공상]]은 단지 직업 구분이었을 뿐 신분의 상하관계를 정한 것이 아니었는데, 상업 발달이 더디던 조선에서 왜곡됐다는 설이 있다. 박지원조차 중국 선비들을 만나 [[사농공상]]이 직업의 구분에 불과하냐고 물었을 정도. 또한 [[호주제]], [[똥군기]] 등 일제의 식민통치와 그 뒤를 이은 [[군국주의]]([[군사독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을 논할 때 다른 부분들은 무시하고 오로지 유교의 폐단이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봤을 때 분명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불교 또한 비슷한 논리로 정도전 등의 유학자들에게 온갖 비판을 받고 조선시대에 비주류로 몰렸던 과거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정말 진지하게 불교가 고려를 멸망시킨 원인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과거의 폐단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결국 조선시대의 문제가 고려시대 불교의 잔재 때문이 아니라 조선 자체의 문제이듯이, 현대 대한민국의 문제는 대한민국 자체의 문제이지 [[조선시대]]의 유교 때문이라 탓하는 것은 잘 된 건 내 덕, 잘못된 건 조상탓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전통 단절'''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사람들이 현대에 가장 유교탓을 하는 소위 [[똥군기]]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근현대에 해당하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에서 대부분 유래되었다는 측면을 볼 때, 과연 '유교탓'은 얼마나 정확한 이해와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항상 의심해봐야만 한다. 오늘날에도 유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종가나 종친의 경우 현대화가 된 지금도 이를 따르고 있으며, 종가 및 종친 출신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온가족 및 종친들이 모두 모여 명절이나 조상의 기일 때 집단으로 제사 및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지금도 일부 종가 및 종친 쪽에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유교의 방식 그대로를 따르고 있으며, 일부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생소한 제사 방식이 남아있다. 현대 가정에서는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직접 만들거나 차리기도 귀찮다며 주로 온라인 등지에서 배달 서비스로 대신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종가 및 종친에서는 조선 중대 이후 확립된 이 '의식'을 아직까지도 고수하고 있다.[* 유교의 제사는 현대에는 비판받는 대상이지만, 최초로 유교식 제사 의식이 주창된 춘추시대에는 분명 어느 정도 가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춘추시대라는 혼란기에는 아직 후대의 [[도교]]처럼 엄밀한 종교의 체계는 갖추지 못했으나 지역마다 등의 잡다한 신(神)을 섬기는 신앙이 상당히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숭배 의식이 [[무당]]의 지도를 받아 상당한 폐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중에는(실제로 춘추시대 이전의 풍속이 남은 것일 수도, 새롭게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상나라]]의 풍속처럼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을 하는 숭배 의식마저 있었다. 예를 들어 [[황하]]의 [[하백]]에게 바치는 제사는 사람을 강에 던져버리는 [[인신공양]]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유교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제사를 '음사(淫祀)', 즉 사악한 제사이며 복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배척하고(주나라의 의식에 기초를 둔) '올바른 제사'를 강조했다. 결국 전근대 유교의 제사 의식은 신을 빗대어 벌이는 [[사이비 종교]] 풍속에 어느 정도 제동장치가 되어줬던 것.][* 반대로 말하면 유교식 제사가 가치가 있었다는 주장은 야만과 인신공양 풍습이 남아 있던 춘추시대에나 가능했던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 각지에서 근대화와 계몽화가 이루어지던 조선시대만 놓고 따져 봐도 제사 문화의 악습은 변호하기 힘들다. 사실 이는 어딜가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데, 종교는 분명 생겨날 당시에는 당대에 약자를 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종교의 교리는 변하지 않는데 사회는 계속 변하여 점점 더 종교가 주장하는 범위보다 더 약자를 존중해가니 결국 종교가 악습으로 치부될 지경으로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이슬람의 교리도 현대의 우리 눈에는 성차별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제법 여성을 존중하는 편이긴 했다.][* 다만 제사의 경우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상을 이렇게 놔야 한다 저렇게 놔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고 심지어는 상을 차리는 것도 '형편껏 차려라' 이게 다였다. 그러니까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도 상을 풍성하게 차려야 한다.' 이런 게 아니었다는 거다. 이 역시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라는 것. 심지어 제사상을 차리는 방식은 그 어떤 것도 주자가례를 포함한 권위있는 예법 책에 실려있지 않았고, '''송시열'''조차 생선을 동쪽에 고기를 서쪽에 놓는 어동육서에 대해서 "바다가 동쪽에 있어서 그런 건가?" 라고 추측했을 뿐이었다.] [[중국]]은 [[5.4 운동]]을 기점으로 유교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으며,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뒤 유교의 폐해가 사뭇 크다고 진단하며 아예 [[문화대혁명]] 시기 유교를 봉건시대의 악습으로 규정하고 [[반달리즘|철저히 유교 경전과 유물들을 파괴했다.]] 이 탓에 중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유교 복원을 위해 한국의 [[성균관]]을 방문하여 [[종묘제례악]]을 비롯한 유교식 예법, 제사법 등을 역수입해가기도 했다.[* 중국에서 유교를 부활시킨 것은 단순히 문화를 복원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후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하여 중국 내부의 모순이 가중되자 중국의 집권세력인 공산당이 본격적으로 유교의 상호 공존 가치를 주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주도로 공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고, 대외 한어 학원의 공식 명칭을 공자학원으로 하며, 공자의 제사를 집행하는 등 다른 문화 복원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유교를 복원시키고 있다. 단순히 문화 복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섣부른 진단이다.] 더군다나 [[문화대혁명]] 당시 유교의 잔재를 모두 타파한다고 벌인 여러 반인륜적인 행위들은 도리어 중국 사회에 크나큰 상흔으로 남고 말았다. 그 후에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도입한 [[북한]] 역시 유교의 잔재를 악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한편, 가부장제 같은 유교의 부정적인 면만 뽑아다 [[주체사상]]이란 것을 만들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